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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문화체험 1주일(7/29~8/5) 프로그램 자료
7월 31일 (월) ①츠루하시, ②오사카성
8월 1일 (화) ③텐노지동물원, ④츠텐가쿠, ⑤시텐노지
8월 2일 (수) ⑥오사카주택박물관, ⑦호젠지, ⑧도톤보리
8월 3일 (목) ⑨기요미즈데라, ⑩헤이안신궁, ⑪은각사
8월 4일 (금) ⑫금강학교
① 오사카 츠루하시 시장(츠루하시역 부근)
주소 : 〒544-0031 오사카시 이쿠노구 츠루하시 1~2쵸메
덴노지・히가시나리・이쿠노의 3개 구에 걸쳐 있는 고시엔 야구장 2곳을 합쳐 놓은 정도의 넓은 부지에, 총 점포 수 약 800여 개를 비롯하여 6개의 시장과 상점가로 이루어진 오사카 츠루하시 시장. JR 오사카 간죠선・긴테츠선・지하철 센니치마에선 「츠루하시역」 부근에는 갈비집을 비롯하여 한국 식품점, 민족 의상, 부티크와 같은 전문점들이 늘어서 있으며, 「국제 시장」인 만큼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미로와도 같은 좁다란 길을 따라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건어물, 일용품, 과일 등의 온갖 전문점이 총집합하고 있는 데 더하여 생선 도매시장까지 있어, 새벽 일찍부터 오사카 시내는 물론 교토 등지의 요리사들이 재료를 사기 위해 몰려든다. 원래는 종전 직후 허허벌판이 된 이 일대에 암시장이 들어서면서 갖가지 물건이 이곳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그때부터 계속 장사를 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장의 외관과 함께 당시의 복고적 분위기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② 오사카성(大阪城)
우리나라 역사와 가장 밀접한 일본인을 꼽으라면 다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떠올릴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하급 무사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무사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하인이었다. 추운 겨울 오다 주군의 신을 가슴에 품고 있는 충성스러움이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들었고,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후, 정권을 잡고 이듬해인 1583년 11월 오사카로 본거지를 이전하는데 이때부터 오사카의 찬란한 역사가 시작되면서 오사카 성 축성이 이루어졌다. 1년 반에 걸친 대규모 공사로 완성된 오사카 성은 성벽 앞에 강물이 흘러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졌으며, 규모 또한 지금의 요도가와 강까지 이를 정도로 큰 성이었다(현재 요도가와 강을 건널 때 오사카 성의 일부 잔재를 볼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4월 12일 조선을 침략하려 했지만 이순신 장군과 조선 의병들의 저항에 밀려나 1598년 병사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기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를 맡겨 그 세력을 유지하려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가문의 정권을 이어간다는 명목 하에 많은 권력을 쌓았다. 1600년 패권을 잡은 그는 대부분의 지방 세력을 편입시키고 도요토미 가문과 추종 세력을 완전히 꺾고자 1614년 오사카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오사카 성에서 공성전을 준비한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절치부심하던 중 강화조약을 내세워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관심을 돌리고, 그 틈을 타 성벽 앞의 강을 메운 후 성을 공략해 드디어 1615년 오사카 성을 점령하고 도요토미 가문의 항복을 받았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오사카 성은 162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셋째 아들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가 재건을 시작하여 1629년 완성되었다. 하지만 도요토미 가문이 축성한 이전의 오사카 성의 잔재를 없애고자 규모를 4분의 1로 축소해서 처음의 거대한 규모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615년 전쟁과 함께 유실된 천수각(天守閣)은 1626년에 도쿠가와 가의 정권 교체 상징으로 도요토미의 천수각보다 더 큰 규모로 구축하였으나, 1665년 낙뢰로 인해 불타 또 한 번 유실되고 말았다. 이후 세 번째 천수각은 1931년 오사카 시민들이 도요토미의 것을 본떠 재건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공격 목표가 되어 일부 소실되었다가 1958년 재건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3년부터 재건이 시작돼 오사카 성을 복원하였고, 오사카 공원을 조성하였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주요 명소가 된 오사카 성은 나고야 성(名古屋城)과 구마모토 성(熊本城)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성으로 일본인의 상징이자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③ 텐노지동물원(天王寺): 오사카의 가장 오래된 공원
오사카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자 일본 남부 지역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얼마 전 새롭게 단장해 조경은 더욱 화려해지고, 시설도 깔끔해져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 봄꽃놀이 시즌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텐노지 공원 서쪽에 동물원이 있어 주말에는 가족 단위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일부 관광객은 공원 진입로에 상주하는 많은 노숙자 때문에 방문을 꺼리기도 한다.
텐노지 공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동물원에는 300종, 1500여 마리의 동물이 살고 있다. 파충류 생태관이나 사바나 초식 동물 구역 등이 있다. 꼬마들이라면 하루 정도 동물원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아할 듯 싶다. 뉴질랜드 국조인 키위가 살고 있으며 코알라 등 호주의 동물도 있다. 1997년 개장한 하마 생태관은 일본 최초로 하마의 수중 생활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④츠텐가쿠(通天閣)
츠텐카쿠는 신세카이 지역의 랜드마크인 전망대이다. 전망대에서 신세카이 지역과 텐노지 공원 등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츠텐카쿠는 '하늘로 통하는 집'이라는 뜻인데, 지을 당시에는 아마 주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신세카이 지역에는 식당들이 많은데, 특히 꼬치튀김인 쿠시카츠가 유명하다.

⑤ 시텐노지(四天王寺)
호류지를 비롯한 많은 불교사원을 건축한 쇼토쿠 태자에 의해 593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가람 배치는 시텐노지식 가람 배치라고 불린다. 회랑 안에 탑과 금당을 앞뒤로 병립시킨 가람 배치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양식 중 하나이다. 1934년에는 태풍에 의해 오층탑이 붕괴하고, 금당과 중문도 피해를 입었다. 1945년에는 교토 공습에 의해 절의 북쪽 일부 건물을 빼고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종파는 천태종이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독립했다. 1663년과 1979년에 사찰복구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창건 당시의 모습을 대부분 재현하고 있다. 경내에는 태자전과 500여 점의 국보와 중요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⑥ 오사카 주택박물관 大阪市立住まいのミュージアム 大阪くらしの今昔館
약 180년 이상 전의 오사카 거리를 재현해 놓은 박물관. 당시의 의상 및 생활상을 볼 수 있다. 거리 곳곳에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모형도 또 하나의 볼거리다. 1일 300명 한정으로 1회 30분 3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기모노 체험이 가능하다. 파격적인 가격인 만큼 예약이 붐비므로 아침 일찍 예약권을 받으러 가는 것이 좋다.
⑦ 호젠지(法善寺)
화려한 도톤보리의 중심부에는 호젠지라고 하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절이 하나있다. 에도시대에 설립된 사원으로, 이곳의 부동명왕상에 물을 끼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호젠지 옆에 있는 호젠지 요코초에는 오래된 상점이나 선술집 등 오사카의 옛 모습을 그대로 남아있다.
⑧ 도톤보리(道頓堀)
도톰보리는 오사카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볼만한 거리이다. 일본의 음식점과 술집과 오락실과 극장 등의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고, 또한 저렴한 술집과 포장마차식 노점상들이 즐비해 있다. 에도시대에 유곽과 요정들이 있던 자리가 지금에 와서는 유행과 패션의거리로 오사카를 상징하는 거대한 거리로 변모해왔다. 오사카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많이 등장했던 큰 게가 간판에 걸려져있던 거리, 광대옷을 입고 큰 북을 등에 업고 북을 치는 인형이 서있는 거리, 현란한 네온사인과 더불어 활기가 넘치는 거리이다. 온갖 먹거리를 즐길 수 있으며, 극장과 패스트푸드점과 작은 선술집들이 지나가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오사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거리로 도톰보리를 꼽는데 오사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로 붐비기도 하다. 작은 골목들이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 자칫하면 길을 헷갈려서 헤맬수도 있으니 유의해서 다녀야 한다.
⑨ 교토 청수사(清水寺, 기요미즈테라)
‘물이 맑은 절’이라는 뜻의 청수사는 교토가 도읍이 되기 이전인 778년 세워진 사원이다. 교토 시내의 동쪽에 있는 오토와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청수사라는 명칭은 이곳에 있는 오토와 폭포에서 유래되었다. 창건 이후 몇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에도시대 초기인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스의 명령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1994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도(古都) 교토의 문화재’의 일부이다. 청수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로는 ‘십일면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있는 본당과 절벽 위에 거대한 목조 구조물로 지어진 ‘기요미즈의 무대’이다. 이곳에서는 교토 시내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⑩ 교토 헤이안신궁(平安神宮, 헤이안진구)
헤이안진구는 간무 천황의 헤이안 천도 1,100년을 기념해 1895년 만들어진 기념 건축물로, 초록색 지붕과 주황색 기둥이 인상적이다. 원래는 더 큰 규모를 계획하였으나, 자금이 부족해 계획된 크기의 절반 정도로만 지어졌으며, 1976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79년 복원되었다. 경내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지만 정원에 들어가려면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봄과 가을에 정원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⑪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와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는 대부분의 교토 여행자의 일정에 들어가는 사찰이다. 사람들은 은으로 덮인 전각을 기대하고 이곳을 찾는데, 실제로는 허름한 전각이다. 원래 이름은 지쇼지(慈照寺)로, 1460년 킨카쿠지를 만든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의 손자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개인 정원으로 만들었다. 금박을 입힌 킨카쿠지를 모방하여 은으로 된 전각을 세우려 한 것인데, 은박을 입히기 전에 요시마사가 죽고 말았다.
모래 정원이 아름다우며, 사찰로 올라가는 길에 상점들이 많이 있어 기념품을 구매하기 좋다. 또한 1994년 교토 문화재의 구성 요소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⑫ 금강학교

오사카 금강학교는 교포자녀들에게 모국과의 연계교육 및 현지 적응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설립된 학교법인으로 수미노에구 난코키타[住之江区南港北]에 위치하고 있다.
1946년 개교한 니시나리[西成] 조선인소학교의 후신이었던 이 학교는 학교법인 금강학원(金剛學園)이 1950년 3월에 우리 정부로부터 초등학교 인가 받았고 1961년 2월에 중·고등학교 인가 받게 되었다. 공식명칭은 금강학원 유치원, 금강학원 소학교, 금강학원 중학교, 금강학원 고등학교이다. 학교와 유치원을 총괄하여 오사카 금강학교라 통칭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의 인가를 받은 정규교육기관이다.
* 연원 및 변천
이 학교의 전신은 1946년 2월에 결성된 니시나리[西成] 조선인교육회(朝鮮人敎育會)에서 오사카시[大阪市] 니시나리구에 있는 일본인학교의 교실을 빌려 개교한 니시나리 조선인소학교이다. 1948년 2월에 교사를 신축하였고 같은 해 4월부터 두 학교의 한국인 학생들을 통합하여 독립된 학교를 운영하게 되었다. 한국인 초대 교장에 김영대(金永大)가 취임하였고 11월 정규 학교의 인가를 위하여 재단법인을 조직, 초대 이사장에 백헌(白憲)이 취임하였다.
1950년 3월 유치원을 병설하였으며, 재단법인 금강학원으로 인가를 받아 교명을 금강소학교(金剛小學校)로 정하였다. 주재국으로부터는 1950년 년 3월에 우리 정부로부터 초등학교 인가 받았고 1961년 2월에 중·고등학교 인가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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